"20년 만에 1위 바뀌었다"…美 휩쓴 멕시코 맥주, 뭐길래 [글로벌 리포트]

입력 2023-11-08 10:26   수정 2023-11-08 16:33

이 기사는 국내 최대 해외 투자정보 플랫폼 한경 글로벌마켓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미국 맥주 시장은 올해 격변기를 맞았다. 버드라이트가 약 20년 동안 지켜온 1위 자리를 멕시코 맥주 모델로에 내줬기 때문이다.

표면적인 이유는 버드라이트가 동성애자와 트랜스젠더 등을 옹호하는 마케팅을 진행하다가 보수 여론의 역풍을 맞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맥주시장 관계자들은 버드라이트가 모델로에 업계 선두 자리를 내주는 것은 시간문제였다고 말한다. 미국민들의 맥주에 대한 취향 변화, 히스패닉 인구의 증가 등 좀 더 복합적인 원인이 있었다고 진단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모델로의 1위 등극이 일회성이 아니라고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트랜스젠더 모델 역풍

버드라이트가 모델로에 시장점유율을 내준 사건은 4월에 시작됐다. 버드라이트는 트랜스젠더 인플루언서 딜런 멀바니와 프로모션을 진행했다. 버드라이트는 멀바니에게 그의 얼굴이 새겨진 제품을 보냈고, 멀바니는 해당 제품을 자신의 소셜미디어에서 보이며 “내가 여성이 된 지 만 1년이 된 것을 기념해 버드라이트가 선물을 보냈다”고 자랑했다.



멀바니는 1000만명이 넘는 팔로어를 보유한 틱톡 인플루언서다. 원래는 아역 배우 출신이었고,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활동 무대를 소셜미디어로 옮겼다. 이후 자신의 계정을 통해 성전환 과정을 일부 보여주면서 더욱 주목받았다.
멀바니가 게시물을 올린 뒤 미국 각지 소비자들이 강하게 반발했다. 정치인과 운동선수, 가수 등 유명 인사들도 공개적으로 버드라이트 구매 거부 의사를 밝혔다.

설상가상으로 버드라이트는 진보 진영의 공격까지 받았다. 논란이 커지자 버드라이트 측은 “수백 명이 넘는 인플루언서들에게 준 기념 제품 중 하나였다”고 수습에 들어갔다. 또 공짜 맥주 이벤트를 벌이는 등 사태 진화에 나섰지만, 오히려 성소수자 지지단체 등 진보 진영의 비난까지 받게 됐다. 보수 여론의 거센 비난으로부터 멀바니를 보호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버드라이트를 소유한 안호이저 부시(AB) 인베브는 버드라이트의 고전으로 미국 지역의 2분기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10.5% 감소했다.
모델로 1위 등극

버드라이트가 마케팅 역풍을 맞는 동안 멕시코 맥주 브랜드인 모델로가 치고 올라왔다. 컨설팅 회사 범프 윌리엄스의 닐슨 데이터 분석에 따르면, 6월 3일까지 4주 동안 미국 소매점 맥주 판매량에서 모델로는 8.4%를 차지했지만 버드 라이트는 7.3%에 그쳤다.

모델로는 이후로도 계속해서 1위 자리를 놓치지 않고 있다. 버드라이트가 맹추격하고 있긴 하지만 근소한 차이로 선두를 지키는 중이다.

업계에서는 멕시코 맥주 모델로가 1위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은 단순히 버드라이트의 마케팅 참사 때문만은 아니라고 보고 있다. 6000개 이상의 미국 양조장을 대표하는 무역 단체인 브루어스 협회의 수석 이코노미스트인 바트 왓슨은 “맥주 업계의 대부분의 사람은 언젠가는 모델로가 버드 라이트를 추월할 것이라고 예상했다”고 말했다.

미국 맥주 시장에선 다양한 브랜드가 출시되고 수입 맥주 종류도 많아지면서 경쟁이 치열해졌다. 게다가 소비자들도 부모 세대가 마시던 버드라이트보다는 새로운 풍미의 맥주를 찾기 시작했다. 비어 비즈니스 데일리의 편집자 해리 슈마허는 젊은 세대가 “가격이 더 비싸더라도 수입품을 찾는 경향이 있다”고 전했다.
히스패닉 인구 증가도 한몫

미국의 인구 통계 학적 변화도 모델로의 성공에 기여했다. 미국의 히스패닉 인구 비중은 2000년의 13%에서 2021년 19%로 늘었다.

미국 내 멕시코 관련 문화 열풍이 분 것도 모델로의 성공 요인이다. 미국 증류주 협의회에 따르면 2003년부터 2022년까지 미국에서 판매된 멕시코 주류인 데킬라와 메즈칼의 양은 273% 증가했다.



멕시코의 국가별 매출 수출 비중을 봐도 미국 내 멕시코 문화 인기를 알 수 있다. 지난해 멕시코는 미국 맥주 수입량 2위인 네덜란드의 7배에 달하는 물량을 선적했다. 닐슨 IQ 분석에 따르면 지난 한 해 동안 멕시코 맥주 판매의 가장 큰 성장은 히스패닉 인구가 비교적 적은 캐나다 국경에 가까운 주에서 이뤄졌다. 비(非) 히스패닉 사람들 사이의 멕시코 맥주의 인기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콘스텔레이션 브랜즈에 따르면 미국 내 모델로 고객의 45%는 비 히스패닉계다.

코로나도 콘스텔레이션 브랜즈가 판매하는 멕시코 맥주이긴 하지만 판매량은 모델로에 못미친다. 코로나는 나이가 많은 백인층을 대상으로 하지만 모델로는 상대적으로 젊고 다양한 인종을 타깃으로 포지셔닝을 했다는 게 업계 분석이다.
모델로와 버드라이트는 같은 회사?
모델로가 시장 1위에 오르면서 일각에서는 어차피 모델로와 버드라이트는 한 회사 제품이기 때문에 두 제품 간 순위변화는 큰 의미가 없다는 목소리도 있었다.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미국에 판매되고 있는 모델로는 멕시코 맥주 기업인 그루포 모델로의 제품이었다. 2012년까지 그루포 모델로의 지분 50%는 버드라이트의 모기업은 AB 인베브가 보유했다. AB인베브는 이 해 나머지 50%도 인수하겠다고 발표했는데 미국 정부가 제동을 걸었다. 미국 법무부(DOJ)가 매각이 완료되기 전인 2013년 1월에 반독점 소송을 제기하면서다. 버드라이트와 버드와이저 등을 소유한 AB인베브가 모델로 관련 지분까지 모두 갖게 되면 미국 시장에서 사실상 맥주 독점 기업이 될 것이라는 게 DOJ의 논리였다. DOJ는 거의 200억 달러 규모에 달하는 인수계약으로 인해 미국 맥주 시장의 경쟁이 “실질적으로 감소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2013년 4월 DOJ는 AB인베브 및 그루포 모델로와 합의에 도달했다. AB 인베브가 그루포 모델로 인수 계약을 체결하는 대신 모델로의 미국 사업 전체를 주류기업 콘스텔레이션 브랜즈에 매각한다는 조건이었다. 즉 AB인베브는 미국 외 지역에서 모델로 판권을 갖고, 콘스텔레이션 브랜즈는 미국 내 모델로 판권을 소유하게 된 것이다. AB인베브는 콘스텔레이션 브랜즈에 모델로와 관련해 영구적인 독점 라이선스와 멕시코 내 양조장 소유권을 29억 달러에 넘기는 데 동의했다.
콘스텔레이션의 급부상

모델로 덕분에 판권을 갖고 있는 콘스텔레이션의 미국 내 입지도 강화됐다. AB인베브가 모델로 미국 판권을 포기했던 당시만 해도 모델로는 미국 내 매출 규모는 10위권 밖이었다. 콘스텔레이션 브랜즈도 뉴욕 북부에 위치한 작은 와인 및 증류주 회사로 로버트 몬다비 와인과 카사 노블 데킬라 등을 판매하는 정도로 알려져 있었다.

콘스텔레이션 브랜즈는 모델로 판권을 인수하자마자 공격적인 스포츠 마케팅에 나섰다. 특히 이종격투기 대회 UFC의 공식 스폰서로 등장하면서 미국 내 입지를 더욱 강화했다. 콘스텔레이션 브랜즈는 2013년 회계연도에는 맥주보다 와인과 증류주를 더 많이 판매했지만 2023년 회계연도에는 맥주가 전체 매출의 거의 80%를 차지했다.
마케팅 ‘투혼’

특히 모델로의 ‘투혼(Fighting Spirit)’ 마케팅은 미국의 다른 기업들도 주목하고 있는 성공 사례다. 콘스텔레이션 브랜즈가 모델로를 인수한 뒤 고객층을 살펴보니 70%가 히스패닉, 30%가 비(非) 히스패닉 층이었다. 모델로의 매출을 올리기 위해선 비 히스패닉 소비자층을 넓힐 수밖에 없었다.

모델로는 이를 위해 2016년부터 ‘투혼’ 마케팅을 시작했다. 히스패닉 소비자를 놓치지 않으면서도 더 일반적인 소비자로 고객층을 확대한다는 두 갈래 전략으로 ‘투혼’ 마케팅을 실시했다.

우선 히스패닉 소비자들에겐 모델로가 힘든 일상의 보상이라는 이미지를 심었다. 매일 일과를 끝내고 즐길 수 있는 맥주라는 인식을 심으려는 것이었다.

비 히스패닉 소비자들에겐 ‘투혼으로 만들어진 맥주’를 강조했다. 출신 성분에 상관없이 노력과 열정으로 제품을 만들어간다는 이미지를 만든 뒤, 소비자들 자신의 삶을 여기에 투영시키도록 유도했다. 콘스텔레이션 브랜드 맥주 사업부의 브랜드 마케팅 담당 부사장인 그렉 갤러거는 “모델로 소비자들은 인내심과 근성, 역경에도 굴하지 않는 투지를 상징한다”고 설명한 바 있다.

모델로의 ‘투혼’ 마케팅은 선수 간 격렬한 시합을 보여주는 이종격투기 대회인 UFC의 이미지와도 맞아떨어졌다. 모델로는 ‘투혼’ 마케팅에 대한 엄청난 투자로 2016년까지 버드라이트가 10년 넘게 꿰찼던 UFC 공식 후원사 자리를 2017년 빼앗았다.

모델로는 UFC뿐 아니라 다양한 스포츠 경기에서 집중적으로 브랜드를 광고했다. 콘스텔레이션 브랜즈에 따르면 모델로 광고의 약 75%가 스포츠 프로그램 중에 방영된다. 주로 얼티밋 파이팅 챔피언십, 대학 풋볼 플레이오프, 콩카프 골드컵 국제 축구 대회 등 몸싸움이 있을 수밖에 없는 격렬한 운동들이다. 2018년부터 2021년까지 광고 대행사 카발리에서 최고경영자(CEO)로 모델로 관련 일을 한 마티 스톡은 “다만 골프에선 모델로를 볼 수 없다”고 했다.

뉴욕=박신영 특파원 nysos198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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